1950년대의 잡지-‘학원’의 표지사진을 보면서 – 송찬섭 -독자시 / 박두진 선 , 소나무 (황경옥) 1958년 8월 학원잡지
1950년대의 잡지-’학원’의 표지사진을 보면서 – 송찬섭 -독자시 / 1950년대의 잡지-’학원’의 표지사진을 보면서 – 송찬섭 -독자시 / 박두진 선 , 소나무 (황경옥) 1958년 8월 학원잡지우연히 올해 서원대학교에서 만든 달력에 1955년 2월에 간행한 학원이 실려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원대학교에 연락해 보았더니 역사문화관에서 일제시기와 해방이후 교과서와 잡지 등을 구입하였는데 학원은 딱 한 권만 구하였다고 한다. 표지는 요즘과 달리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발그레한 뺨의 어리고 귀여운 학생들의 모습으로 봐서 당시로서는 중학생 잡지였던 모양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특집으로 ‘학생과 문학’과 ‘동학난과 전봉준 선생’이 실려있음을 보여준다. ‘학생과 문학’은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학생들에게 문학의 꿈을 싣고자 ‘학원문학상’ 제정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동학난과 전봉준 선생’이라는 글이 중학생잡지에 실린 것은 일견 뜻밖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런 주제를 어린 학생들이 소화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무렵에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기도 하였다. 아마도 요즘 생각하는 학생잡지와는 성격이 다르고 내용도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고 보인다. 역사문화관에 전화해 보니 필자는 유광렬이라는 분이라고 하였다. 유광렬(1897-1981)은 기자로서 거의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일제시기 방정환과 함께 청년구락부란 비밀결사를 조직, 청년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0년 동아일보에 입사한뒤 사회부 기자로 3·1운동 관련 공판기사를 취재하거나, 1922년 金益相, 1923년 金相玉 사건 등을 취재하였기에 사회적 의식이 있었다고 보인다. 이 글도 아마도 기자 생활(한국일보?)을 하면서 쓰지 않았을까 하는데, 물론 학생잡지에 실린 글이어서 학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글은 아니겠지만 어떤 시각에서 썼을까 하는 점은 당시 학문적 흐름과 사회 분위기와 관련하여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에 한번 직접 글을 찾아 읽어보고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
1950년대의 잡지-’학원’의 표지사진을 보면서 – 송찬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