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필] 밤이 없는 – 무한의 세계


시간의 개념이 없는 무한의 세계..
외계행성 ‘HD131399Ab’ 와 세 항성의 가상 이미지./ESO·L.Calcada 제공


성당에 가면 가톨릭 신부들은 ” 천국은 지금 현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한는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성서에서는 ,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 제22장5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혹시 , 천국이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고, 지금 현재에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무한의 세계에 대하여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것부터 따져보면, 삶과 죽음이 있습니다. 태어나고 살다 죽는것.  그 이후는 무한의 세계입니다. 무한의 세계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무한의 세계에서는 죽음이라는것은 있을수 없습니다(죽은 다음에 또 다시 죽는다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겠지요).

우리가 인생에서 기쁨을 기쁨을 느낄때는 언제 일까요, 우선원초적인 기쁨은, 배가 고팠을때,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아주 기쁨니다. 연인과 잠자리를 갖이하고 하나가 될때 기쁨니다. 갖고 싶은것을 드디어 소유하게 되었을때 기쁨니다,  일을 마치고 주말에 편안히 잠을 잘떄 아주 기쁨니다. 등등 우리를 기쁘게 만드는 것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런대 과연 무한의 세계에서는 위와같은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요? 앞서 나열한 기쁨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갖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다음에는 장가가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모두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얼듯 생각하기에, 천국에는 인간적으로 느끼는 기쁨대신 다른 종류의 기쁨이 있겠지요?
그럼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토록 만나보고 싶은 예수님,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  그리고 영원한 사랑과 평화, 하느님과 항상 함께있는 커다란 기쁨, (아마도 육체적이것이 아닌 정신적인, 영혼의 기쁨을 말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하면, 영혼만 부활하는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썩어 없어질 현세의 육신은 불멸의 옷으로 다시 갈아 입닌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신이 동시에 부활합니다.

아마도, 천국은 하느님과 함께 있고, 영혼과 육신이 느낄수있는 최상의 기쁨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네요.

근데, 지금 나는 정말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만나보고 싶어 하는가?

아직 천상의것을 맛보지 못해서 그런지, 이 지상에서 누리고 싶어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얼마안되지만, 갖고있는 집과 푼돈으로 마누라와 가끔 여행가고 맛있는것 먹으러가고, 덧밭에 농사나 짓는것을 기쁨으로 아는 나는 아직 예수님이 미치도록 그립지가 않아 걱정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살아있는동안, 이 지상의 삶을 모두 뒤로하고, 오직 하느님 나라에 가는것 자체만 강요하시지 않을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말씀대로 피조물로서의 역활, 즉 창조주 께서 바라시는 뜻 데로 행복하게 하느님께 감사하며 잘 살면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것을 맛보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무한의 세계는 언젠가 반드시 우리모두 다 갈겁니다. 그때를 위해 열심히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을 가슴에 세기며, 잘 살아 갑시다. 아멘!

이 수필을 쓰고나서, 이틀후 답을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천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천상에 보물을 많이 쌓아서 이고, 이승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승에 보물을 많이 쌓아 두어서 그런랍니다.
너희 보물이 있는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는 말씀이 이제 무슨뜻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늘에 보물을 많이 쌓아 , 천상을 그리워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마태 6,19-21)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Daniel. C


오늘의 묵상(매일 미사 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더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더 많은 은총을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부과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자존심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그만큼 더 큰 책임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8,39 참조).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종교 도시로서, 종교 교육도 잘 이루어졌던 도시입니다. 또 카파르나움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업이 번성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편에 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이 윤택하고 평화로우면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신앙도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지지 못하고, 최소한의 계명 유지와 외적인 형식 위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이 도시들은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들과 풍요로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 결국 예수님의 꾸지람을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부족할 때 주님을 찾습니다. 부족함은 우리 마음에 아쉬움을 주고 그 아쉬움이 커지면 간절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풍족할 때 오히려 주님을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풍족함으로 우리에게 더 큰 사명과 임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성령의 선물로서
우리 성스러운 종교 진리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그 진리들을 아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지만,
그 진리를 익히고 맛들이는 것은 깨달음을 통해서이다.
계시된 진리의 내적인 의미를 꿰뚫어보고 그 진리로써 새로운 삶으로 나서게 된다.
우리 신앙이 실속 없고 활력 없는 무엇으로 그치지 않고,
엄연한 생활 양식으로 바뀌어 우리 안에 있는 신앙을 웅변적으로 증언하게 만든다.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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