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의 마지막 영광. 페르시아 제국을 만나다.키루스와 다리우스

오리엔트의 마지막 영광. 페르시아 제국을 만나다.키루스와 다리우스

신바빌로니아의 혼란을 노렸던 곳이 메디아입니다. 그런데 바빌론 내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와 결탁을 하고 이를 안 메디아가 방해하려고 했지만 키루스는 BC 550년경 메디아를 쓰러트립니다. 그러면서 소아시아의 도신들을 손에 넣어 지역의 상권ㅇ르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BC 540년, 기름지고 교역이 편리한 신바빌로니아로 군대를 돌려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제국을 점령합니다. 실제로 무혈입성을 한 것입니다.
키루스 2세가 뛰어났던 것은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제국과 다르게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포로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 보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동방의 여러 원주민과 유목민을 통합시키고 오리엔트를 거의 수중에 넣은 키루스 2세를 뒤 이은 캄비세스가 왕이 되면서 이집트까지 정복하게 되고, 다리우스 1세때는 앗시리아 이후 분열되었던 오리엔트를 완전히 통일시킵니다. 페르시아는 고대 동방의 최후, 최대의 제국입니다. 다리우스 1세가 다스리는 페르시아 제국은 서쪽으로는 에게 해,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대제국이었습니다.
방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서 다리우스 1세는 총독제를 실시하여 지방의 세금을 중앙으로 귀속시킵니다. 전국을 20개주로 나누고 총톡을 파견했을 뿐 아니라 도로와 화폐 제도를 정비하고, 중앙과 지방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리우스 1세는 ‘왕의 눈’, ‘왕의 귀’라고 불리는 감찰관을 파견해 지방을 감시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역시 키루스 2세처럼 정복지 백성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했고 그들에겐 공물과 조세만 걷었을 뿐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정치는 수도인 수사에서 행해지고, 바빌론은 왕이 겨울에 묵는 곳이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제국의 명성에 걸맞는 왕국을 짓기로 하고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매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한 신년제가 열렸는데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 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각가지 공물을 가지고 페르세폴리스로 모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의 또 하나의 업적은 해상무역을 위해 나일 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를 만들었고 선박을 건조하여 활발한 무역을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소아시아의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의 지원을 받아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이에 다리우스 1세는 아테네 정벌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아테네의 북동쪽의 마라톤 평원에서 그리스에게 패하게 되고, 아테네와의 일전을 다시한번 준비하던 다리우스 1세는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이 크세르크세스1세로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라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초기 속주인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그리스와의 전쟁을 위해 해군을 증강합니다. 당시 크세르크세스는 전국에서 18만 명 이상의 원정군을 징집하여 BC 480년 그리스군이 진을 치고 있던 아테네 북서쪽의 테르모필레로 진격해 들어갑니다. 영화 [300]이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300인의 스파르타군이 영웅적으로 방어를 했지만 결국 몰살을 당한 것처럼 실제로 페르시아군을 막는 것은 벅찬 일이었습니다. 결국 아테네 인들 역시 도시를 버리고 도망을 갔고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에 있던 많은 신전과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얼마뒤 페르시아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큰 패배를 맞보게 됩니다. 숫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좁은 만에서 치르는 전투에 그리스군은 매우 능숙했기 때문에 유리했습니다. 그 뒤로도 페르시아는 여러 차례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전장이 잦으면 내부가 혼란하게 되어 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역시 결국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동방 마지막 제국인 페르시아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은 결과적으로는 그리스에게 무척 큰 상처와 아픔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페르시아는 승리를 못했을 뿐이지만 그리스는 본토가 유린당한 것입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전국토가 유린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트간에 경쟁시대를 지난 후 마케도냐에서 알렉산더라는 걸출한 영웅이 등장합니다. 먼저 그리스를 통일한 알렉산더는 이젠 칼끝을 페르시아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BC 331년에 알렉산더에 의해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무너지고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BC 323년에 알렌산더가 죽은 후 그의 장군들이 알렉산더의 제국을 분할했는데 이집트를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페르시아와 그 인근 지역을 셀레우코스 1세가 통치합니다. 셀레우코스 1세는 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그리스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와 평화를 유지하며 헬레니즘 문화와 인도의 문화가 교류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헬레니즘이 무엇인지 집어 넘어가야 겠습니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한 문화로서,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새로이 태어난 문화입니다. 헬레니즘 문화는 세계 시민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을 발전했는데, 좁게는 그리스 문화, 그리스 정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오리엔트적인 전제군주풍의 의례를 채용하고, 페르시아 왕녀와 결혼하고 페르시아 귀족을 친위대로 채용하는 등 이민족 통치의 수단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결합을 시도하여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된 것인데 영화 [알렉산더]를 보면 그런 알렉산더에게 주변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스만 대단하다고 여겼던 알렉산더지만 오리엔트의 위대한 문명을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아마 고대인들 중에 최초의 세계시민이 있다면 그건 단연 알렉산더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그리스는 폴리스의 강력한 지배력에서 벗어나 개인주의 발생했고,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키니코스 학파, 키레네 학파 등의 철학파가 생겨났습니다. 예술 부분에서도 전시대의 특징인 이상화가 약화되고 사실적, 육감적인 표현들이 나타났고,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페르가몬 등을 중심으로 문헌학,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였으며 창조적인 문학 등을 오히려 쇠퇴했는데 이것이 헬레니즘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다 BC 3세기 중엽에 가면 그리스 계의 박트리아와 이란계의 파르티아가 독립하면서 특히 파르티아는 점차 셀레우코스 왕조의 영토를 빼앗아 갔습니다. 파르티아는 BC 2세기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영토를 지배했는데, 파르티아가 유리했던 점은 동서 무역로의 요지를 장악하여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BC 1세기 중엽에 가면 결국 파르티아는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중계 무역으로 발전하던 파르티아 왕조는 동방으로 진출한 로마와 충돌하면서 국력이 약하지게 됩니다. 이후 쇠퇴기에 들어간 파르티아는 이란 고원에서 일어난 사산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중앙 집권체제를 정비하고 동서무역을 독점하여 크게 번영해 나갑니다. 아르다시르 1세가 할아버지 사산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인 사산왕조는 7세기 중엽까지 페르시아를 지배했고, 통치 기간 동안 로마와 계속해서 전쟁을 치뤘던 대제국인데 지금까지 세계사를 유럽중심으로 배웠기 때문에 사산왕조에 대해서 잘 배우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4세기에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는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간의 종교투쟁의 양상도 보였는데 한 가지 알아야 것은 일부의 기독교 세력은 로마를 버리고 오히려 사산왕조로 투신하여 그 안에서 또 다른 기독교의 역사를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럽만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아 기독교의 또 다른 역사가 있습니다. 중국에 들어간 경고, 몽고의 야리가온 등이 모두 시리아 교회의 전통에서 나온 교회들입니다.
사산왕조는 6세기 중반에 최전성기를 누렸는데 로마 제국에게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기도 했고, 아케메네스 왕조 제국의 일부였던 영토를 되찾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까지 진출했지만 점령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잔틴 제국과의 계속적인 분쟁과 궁정의 내분, 지방 세력의 반란으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다가 마침내 이슬람 세력의 등장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비잔틴 제국은 로마가 동서로마로 분열했을 때 동방제국, 즉 동로마제국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이념과 제도를 이어받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 고전 문화를 잘 보존하여 이를 서유럽에 전달하는 다리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쪽으로부터 잇따라 침입한 유목민족, 동방의 위협적 존재인 사산왕조 페르시아 및 이슬람 교를 믿는 아랍, 투르크 등의 이민족을 격퇴하여 서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고, 동유럽 문화권의 형성에 이바지했스니다.

페르시아의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페르시아 인은 카프탄이라고 하는 길고 헐렁한 옷을 입었고, 가발을 썼으며 보석을 좋아했습니다. 평민은 진흙으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았는데 오늘날 이란의 시골 사람들이 현재 살고 있는 오두막과 비슷합니다. 반면 귀족과 왕은 돌로 만든 큰 집과 궁전에 살았습니다.
성인 남자는 아들에게 말타기 활쏘기를 가르쳤고, 거짓말을 하거나 빚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남자는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었고, 왕은 왕비를 상류층 가문에서 택해야 했습니다.
언어는 당시 오리엔트 전역에 걸쳐 상업용어로 사용된 아람어를 사용했는데, 페르시아 인은 아람 어의 사용을 인도, 중앙아시아, 소아시아까지 확대시켰습니다.
페르시아 인은 태양이나 하늘과 같은 자연을 신격화해서 믿었고 신들이 인간생활을 관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신전을 만들지 않고 신에서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냈습니다. BC 1400-1000년 사이에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고대 종교를 개혁했는데 조로아스터는 지혜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의 신으로 강조했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와 암흑의 신 아리만 사이의 싸움에서 결국 아후라 마즈다가 승리함으로써 세계가 구원을 받을 것을 설파했고, 선한 생각, 말, 행동에 근거한 신앙을 전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