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조반니 로톤도의 비오 신부 – 묵주기도 관상기도

하루에 보통 15단씩 40번에서 50번, 60번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는 비오 신부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신부님, 어떻게 그렇게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실 수 있습니까?”
그러면 비오 신부는 이렇게 반문했다.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있나?”
비오 신부는 침묵 중에 보이지 않게 기도했다. 비오 신부의 손에는 늘 묵주가 있었다.
그러나 묵주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오 신부는 언제나 자신의 구멍 뚫린 손을 가슴의 옷깃 안에 넣고 묵주알을 굴렸기 때문이다.
비오 신부는 어떠한 장애에도 상관없이 한결같이 옷 속에서 묵주알을 굴렸다.
식사 때에도 한 입만 먹고 나면 수도복 속에 손을 넣고 묵주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기도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수사들과
적절하게 이야기도 하고 다른 대화에 끼어들기도 하였다.
이런 개인 기도와는 반대로 공동체 기도에서는 완전히 몰입하여 기도했다.
특히 예수 성심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를 드릴 때에는 마치 예수님이 앞에 계시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도했다.

비오 신부는 거의 자지도 않고 기도 했는데, 어쩌다 우연히 묵주기도를 바치다
묵주를 손에 쥔 채 잠이 들면 짚었던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꽉 쥐고 있다가
깨면 다시 그 자리부터 기도를 계속했다.
그에게 산다는 의미는 예수님과 마리아를 관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오 신부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은 지금도 산 조반니 로톤도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은 묵주 도시가 되었다.
비오 신부는 언제나 말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펼치십시오.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동정녀를 향한 인사말인 성모송에 집중하고 신비의 묵상에 침잠하십시오.”
비오 신부에게 묵주기도는 염경기도가 아닌 묵상기도 였다.
흔히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칠 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라는 성모송만 바치고
예수님의 신비를 깊이 관상하지 않는 다.
그러나 묵주기도의 본질은 관상기도다.
묵주알 한 알 한 알을 굴리면서 우리는 그 한 알 한 알에서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신비를 묵상하고 예수님과 마리아를 바라보는 관상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관상할 때 매번 반복되는 성모송은 순간순간 마다 새로운 사랑의 고백이 된다.

“내가 다시 반복해서 말합니다, 시기, 무기력, 좌절, 불신의 유혹등, 이 모든것들은 악마의 작용입니다”

“주님은 나의 가장 자상하고 최고의 아버지. 그의 자녀들이 그에게 간구할때, 어김없이 들어 주신다.”    –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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